부처님의 일생 - 기원정사
기원장사의 기진
★ 기원정사의 탄생
코사라국의 수도 사위성에 수달타(Sudatta, 須達多)라는 큰 부자가 있었다. 그는 의지할 곳 없이 고독한 이들에게 식사를 공양하는 장자(給孤獨長者)로도 유명한 사람이다. 장사차 왕사성을 방문하던 그는 부처님이 그곳에 계시다는 소문을 듣고 부처님을 만난다. 그리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귀의하여 재가신자가 된다.
사위성으로 돌아온 수달타는 부처님과 제자들을 그곳으로 초대하고 싶었지만 적당한 장소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코사라국의 기타태자(祇陀太子)의 정원이 적당하다고 보고 그곳을 자신에게 팔아줄 것을 태자에게 부탁한다. 그러나 태자는 설령 금화로 정원을 다 덮는다고 해도 팔지 않겠다고 이를 거부한다. 수달타는 생각 끝에 만약 금화로 정원을 덮는다면 그 덮은 만큼의 면적의 정원을 자신에게 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하인들을 시켜 금화로 정원을 덮기 시작한다. 그러한 수달타의 열의에 감동한 태자는 토지를 수달타에게 내 주었고 부처님께 기진할 정사(精舍)를 지을 수 있었다고 한다.
기원장사(祇園精舍)라는 이름은 기원에 새워진 정사라는 뜻인데, 기타태자의 정원, 즉 「祇陀園」에서 타(陀)자가 생각된 것이 기원(祇園)이다. 후에 부처님은 제자들과 함께 이곳을 자주 찾았으며 많은 경전들이 이곳 기원정사에서 설해진 부처님의 설법들이다.
기원정사가 생기기까지의 이상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몇 가지 당시의 시대상을 읽을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중요한 것은, 당시 갠지스강 유역의 화폐경제가 크게 발달하여 이를 통해 부를 축적한 상인 계층들이 많이 있었으며, 이들은 기존의 왕이나 무사계급들의 전유물 이라고 도 할 수 있었던 토지에 대한 권리를 금전을 통해 사들이기도 하였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들 상인 계급들은 불교교단의 경제적 후원자로서 교단 발전에 큰 역할을 담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