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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관음성지 여수돌산 용월사 &amp;gt; 불교공부방 &amp;gt; 불교역사</title>
<link>http://yongwolsa.org/bbs/board.php?bo_table=b42</link>
<description>관세음보살님은 모든 중생의 소원을 들어주시는 대자대비의 화신이십니다. 화엄경의 입법계품을 보면 관세음보살님이 계신 곳이 인도 남쪽의 해안에 있는 보타락산(補陀落山)이라고 합니다. 법을 구하기 위해 천하의 선지식을 찾아 길을 나선 선재동자(善財童子)가 인도의 남쪽 해안 보타락산에서 관세음보살님을 만났던 것입니다. 그래서 대자대비 관세음보살의 정토를 보타락정토라고 합니다.</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item>
	<title>불교교단의 분열</title>
	<link>http://yongwolsa.org/bbs/board.php?bo_table=b42&amp;wr_id=22</link>
	<description><![CDATA[<p>교단의 분열</p>
<p> </p>
<p>★ 부파불교의 시대</p>
<p><br /></p>
<p>아쇼카왕의 명으로 세워진 몇몇 비문들 중에는 불교교단의 분열을 막아야 한다는 내용이 전한다. 이는 곧 당시에 이미 불교교단의 분열위기가 있었음을 반증한다.</p>
<p><br /></p>
<p>부처님이 열반하시고 100년 정도가 되면, 교단내의 여러 이견들을 조율하기 위해 700인의 수행자들이 모여 집회를 연다. 당시에 가장 문제가 되었던 것이 계율을 보다 철저히 지켜야 할 것인가 아니면 보다 온화하게 해야 할 것 인가였다. 집회에서는 계율을 보다 엄격히 지켜야한다는 장노들의 주장이 인정되었지만, 이에 불만을 품은 수행자들이 다수 있었고, 이는 후에 교단의 결정적인 분열로 발전하고 만다. 이 분열을 불교사에서는 근본분열(根本分裂)이라고 하며, 장노 그룹을 상좌부(上座部), 그들에게 불만을 품었던 다수파들을 대중부(大衆部)라고 한다.</p>
<p><br /></p>
<p>이 근본분열은 인도 각지의 교단이나 승원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고,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논쟁들을 나타난다. 인도 전역에 넓게 퍼져 있었던 불교교단은 각 지역의 특성이나 정보의 흐름 등에 따라 또 다시 여러 차례 분열을 일으킨다. 이 분열을 불교사에서는 지말분열(枝末分裂)이라고 한다.</p>
<p><br /></p>
<p>★ 각 부파가 서로 정통성을 주장하다</p>
<p><br /></p>
<p>이렇게 분열된 각각의 부파들은 저마다 논리와 정통성을 주장하게 된다. 부파불교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부파란 일정 그룹의 교단을 말하는데, 각각의 부파들이 저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정통으로 계승하였다고 주장한다. 정통(正統)이란 부처님의 직제자로부터 어어 받은 ｢제자로서의 불교｣를 말한다. 제자란 부처님의 가르침을 정통으로 듣고 따르는 자라는 의미에서 성문(聲聞)이라고 한다. 이들 성문들의 불교를 후대에 흥기하는 대승불교에서는 성문승(聲聞乘) 혹은 소승(小乘, 좁은 가르침, 작은 수레)이라고 한다.</p>]]></description>
	<dc:creator>용월사</dc:creator>
		<dc:date>Mon, 16 Aug 2010 14:00:27 +0900</dc:date>
	</item>
	<item>
	<title>아쇼카왕의 불교옹호</title>
	<link>http://yongwolsa.org/bbs/board.php?bo_table=b42&amp;wr_id=21</link>
	<description><![CDATA[<p>아쇼카왕의 불교옹호</p>
<p> </p>
<p><br /></p>
<p>★ 불교에서 이상적인 왕</p>
<p><br /></p>
<p>부처님이 열반하시고 약 120년, 역사상 처음으로 인도 전역을 통일한 아쇼카왕이 기원전 268년 즉위한다. 아쇼카왕은 통일과정에서 있었던 수많은 전쟁과 살육에 깊이 참회하여 불교에 귀의하였다고 한다. ｢법에 의한 승리｣를 바랬던 아쇼카왕은 새로운 통일왕국 전역에 불교를 적극적으로 전파함은 물론 시리아, 이집트, 마케도니아 등의 외국에까지 불교전도의 사자를 파견한다.</p>
<p><br /></p>
<p>왕 스스로가 부처님의 족적을 따라 순례하였으며, 불법을 준수해야 한다는 칙령을 암벽이나 돌기둥에 새겨 전국 각지에 두루 설치하였다. 이 비문이 현재 아프카니스탄 지역에서 발견되는 등 광범위한 지역에 불교를 전파시키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비문에서 가장 강조되고 있는 것은 생물의 생명을 중시해야한다는 내용인데, 실제로 아쇼카왕은 인간뿐 만 아니라 동물들을 위한 병원도 건설하였다. 아쇼카왕은 불교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를 보호할 것을 선언한다. 그리하여 종교보호를 위해 관리를 임명하고 전국을 순회하도록 한다. 그 결과 불살생의 이념과 타 종교에 대한 관용이 인도 전체로 침투되었고, 이러한 사상은 아쇼카왕 이후에도 인도의 정신문화를 특징짓는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는다.</p>
<p><br /></p>
<p>불교에서 이상으로 여기는 국왕은 경건한 덕을 갖추고 국민의 행복을 무엇보다도 우선시하는 자이다. 그가 곧 아쇼카왕이었으며, 전륜성왕으로서 불교에서 이상적인 군주로 여겨지고 있다.</p>
<p><br /></p>
<p>부처님이 초전법륜을 행하신 곳(녹야원)에 세워진 아쇼카왕의 석주는 네 마리의 사자가 서로 등을 대고 있는 모양으로 조각되어 있다. 이는 부처님의 설법이 사방으로 두루 퍼져나감을 상징하는 것이며, 사자상 아래 부처님의 설법을 상징하는 법륜이 묘사되어 있다. 아울러 이 디자인은 현재 인도의 국가문양이며, 국기에도 표현되어 있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이후 독립한 인도통일의 상징이기도 하다.</p>]]></description>
	<dc:creator>용월사</dc:creator>
		<dc:date>Mon, 16 Aug 2010 13:59:55 +0900</dc:date>
	</item>
	<item>
	<title>불교교단의 규율</title>
	<link>http://yongwolsa.org/bbs/board.php?bo_table=b42&amp;wr_id=20</link>
	<description><![CDATA[<p>교단의 규율</p>
<p> </p>
<p><br /></p>
<p>★ 합의제로 운영되었던 교단</p>
<p><br /></p>
<p> </p>
<p><br /></p>
<p>수행을 행할 때는 무엇보다도 마음을 청정히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한 마음가짐이 곧 계(戒)인데 이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른 것이다. 한편, 교단에서 집단생활을 유지하는 데 있어서 집단의 규율이 문제시 된다. 부처님이 계실 때에는 문제가 일어날 때마다 부처님께 직접 묻고 이를 규율로서 정하였다. 특히 출가자의 의식주에 관한 규정이 교단 초기부터 구체적으로 정해지기 시작한다.</p>
<p><br /></p>
<p> </p>
<p><br /></p>
<p>후에 수행자로서의 마음가짐인 계와 교단의 규율이 점차 명확히 구별되어 간다. 전자를 계(戒)라고 하고, 후자를 율(律)이라고 한다. 율은 출가자들의 집단생활이 많아질수록 점점 늘어나 비구(남성출가자)의 경우 250항목이 되며, 비구니(여성출가자)는 이보다 더 많다. 율을 어긴 경우의 처벌규정도 정해졌다.</p>
<p><br /></p>
<p> </p>
<p><br /></p>
<p>광대한 영토에다 교통이 불편했던 고대 인도에서는 일정 지역마다 교단이 설치되었으며, 출가자가 그 지역에 들어가게 되면 역시 그 지역에 소속되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각 지역의 교단에서는 집회를 열어 율을 어긴 출가자들을 처벌하였다.</p>
<p><br /></p>
<p> </p>
<p><br /></p>
<p>처벌의 종류도 가벼운 것에서부터 무거운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도둑질, 간음, 살인, 교단의 분열 및 혼란을 일으키는 거짓말 등의 가장 무거운 죄를 지은 경우 교단에서 추방되었다. 또한 이상의 중죄를 꾀하거나 다른 출가자를 교단에서 추방시키기 위해 계략을 쓴 경우 7일간의 근신에 처해졌다고 한다. 남녀 출가자가 함께 있는 것도 무거운 죄였는데, 이는 목격자의 증언에 따라서 처벌이 정해졌다. 또한 가져서는 안 되는 물건을 소유하였을 경우 그것들을 모두 몰수당함은 물론 참회를 의무시하였다.</p>
<p><br /></p>
<p> </p>
<p><br /></p>
<p>이러한 교단의 집회는 물론 교단의 운영 모두가 교단에 참가한 수행자들의 합의제로 이루어졌다. 이는 당시 인도 각 지역의 부족들이 대부분 공화제 정치를 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영향이 큰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p>]]></description>
	<dc:creator>용월사</dc:creator>
		<dc:date>Mon, 16 Aug 2010 13:59:21 +0900</dc:date>
	</item>
	<item>
	<title>불교교단내의 생활</title>
	<link>http://yongwolsa.org/bbs/board.php?bo_table=b42&amp;wr_id=19</link>
	<description><![CDATA[<p>교단내의 생활</p>
<p> </p>
<p><br /></p>
<p>★ 실천규범</p>
<p> </p>
<p>그들은 스스로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모든 계획을 세우기 위해 노력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돈이 많이 든 음식은, 돈이 많이 든 가사, 돈이 많이 올랐습니다. 금전적 조치가 금지되었습니다. 실 반이후" 100여 년이 지나서 그들에게 100여만원, 왕위에 올랐습니다.</p>
<p> </p>
<p>현재 이상적인 위치에 있어 최적의 타이밍에 최적의 시간을 갖기 위해 최적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 릴은 누더기 천을 귀가 가사를 만들게 되었고, 그들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 이에 대한 일과 '함께 하는 이야기', '일과 함께', '얘들아' 들켰다.</p>
<p> </p>
<p>5월부터 8월까지 시기가 촉박하게 되었고, 날씨가 좋지 않았으며, 일상적이지 않고, 일상적이지 않았다.</p>
<p> </p>
<p>★ 지은이를 참회한다.</p>
<p><br /></p>
<p>궁극에 도달하셨고, 15일까지 도달하셨고, 끝내 천명에 도달하셨습니다. 이 보름날 초인도 우포사다(Uposadha, 포항, 布薩)는 뜨는 날짜에 이 포살의 서비스가자자 뿐만 아니라 전희에 대해 한시적으로 달달한 마음을 달달, 설혜진 처분으로 전희를 돌보게 되었습니다.</p>]]></description>
	<dc:creator>용월사</dc:creator>
		<dc:date>Mon, 16 Aug 2010 13:58:55 +0900</dc:date>
	</item>
	<item>
	<title>불교교단의 성립</title>
	<link>http://yongwolsa.org/bbs/board.php?bo_table=b42&amp;wr_id=18</link>
	<description><![CDATA[<p>불교교단의 성립</p>
<p> </p>
<p><br /></p>
<p>★ 비구(比丘)·비구니(比丘尼)·우바색(優婆塞)·우바이(優婆夷)</p>
<p> </p>
<p><br /></p>
<p>불교교단은 부처님과 제자들에 의해 형성되었다. 그 시작은 부처님이 처음으로 설법(初轉法輪)하여 다섯 비구가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을 때부터라고 할 수 있다. 당시에는 제자가 되기 위한 특별한 의식과 같은 것은 없었다고 한다.</p>
<p><br /></p>
<p>불교교단 내에서 출가자 집단을 상가(Samgha)라고 하는데, 이를 소리 나는 대로 중국으로 번역한 것이 승가(僧伽)이다. 다시 이것을 줄인 것이 승(僧)이다. 따라서 승(僧, 스님)은 원래 출가자 개인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출가자 집단, 즉 상가 내지는 교단을 가리키는 말이다.</p>
<p><br /></p>
<p>출가 이전의 사회에서의 계급 등은 교단 내에서 일체 무시되었기 때문에 계급제도의 속박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많은 이들이 교단에 들어갔다고 한다. 교단 내에서 다시 계급을 나누는 일은 없었지만, 연장자나 수행이 깊은 이들이 우선시 되었다고 한다. 한편, 남녀의 구별은 엄격히 지켜졌는데, 남성출가자 교단과 여성출가자 교단은 각각 별도로 운영되었고, 계율에서도 차이가 있었다.</p>
<p><br /></p>
<p>처음에는 교단에 들어가기 위한 의식이 정해져 있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의식이 제정되게 된다. 의식의 기본은 스승이 되는 수행자가 새로운 수행자에게 수행자로서의 마음가짐이나 서약, 교단의 규율 등을 내리고, 이를 받아들이는 형식이다. 이를 수계(受戒)라고 하는데 말 그대로 계율을 받는다는 의미다. 수계를 받은 출가자는 특정 스승에게서 장기간 가르침을 받는 것이 의무시되었다.</p>
<p><br /></p>
<p>출가교단은 재가자들의 기진·보시로 생활을 유지한다. 남성재가자를 우바색(優婆塞)이라고 하고, 여성재가자를 우바이(優婆夷)라고 한다. 재가자들의 계율은 출가자들과 별도로 정해졌다. 남성출가자 비구(比丘)·여성출가자 비구니(比丘尼)·남성재가자 우바색(優婆塞)·여성재가자 우바이(優婆夷), 이들 네 그룹이 불교교단을 이루는데 이들을 다른 말로 사중(四衆)이라고 하며, 사부대중(四部大衆)과 같은 말이다.</p>]]></description>
	<dc:creator>용월사</dc:creator>
		<dc:date>Mon, 16 Aug 2010 13:58:03 +0900</dc:date>
	</item>
	<item>
	<title>부처님의 장례와 유골(사리)의 분배</title>
	<link>http://yongwolsa.org/bbs/board.php?bo_table=b42&amp;wr_id=17</link>
	<description><![CDATA[<p>부처님의 장례식과 유골의 분배</p>
<p> </p>
<p>★ 부처님에 대한 사모가 더욱더 커지다</p>
<p> </p>
<p><br /></p>
<p>인도 각지에 흩어져 수행에 전념하고 있었던 제자들에게 부처님의 열반 소식은 빠르게 전해진다. 그들은 쿠시나가라에 모여 부처님의 열반을 슬퍼하였다. 그 중에 수행이 깊은 이들은 생사의 무상함을 부처님께서 몸소 가르쳐 주신 것이기 때문에 슬퍼하지 하지 말라고 대중들을 달래기도 한다.</p>
<p><br /></p>
<p>일부 출가자들 중에는 이제 부처님이 없으니 여러 가지 엄한 계율들로부터 해방되었다고 기뻐했던 이들도 있었던 모양이지만, 대부분의 제자들은 교단의 새 지도자 마하가섭의 지도를 따랐다.</p>
<p><br /></p>
<p>부처님의 장례는 쿠시나가 일대에 살고 있었던 마가족에 의해 거행된다. 제자들이 장례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는데, 이는 수행자가 제사에 관여하는 것 보다는 수행에 전념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부처님의 주검은 깨끗한 새 천에 정중히 쌓여, 행료를 뿌린 장작 위에서 다비에 붙여진다.</p>
<p><br /></p>
<p>부처님의 열반소식을 들은 각지의 왕족들이 사자를 보내왔고, 이들이 모두 자신들이 부처님의 유골을 모실 자격을 주장하여 다툼이 일어난다. 한 바라문의 중재로 사리는 팔분되어 각각의 부족들에게 보내지고, 이로서 각각의 지역에 사리탑이 건설된다. 또한 다비시에 남은 재와 사리를 나눌 때 사용한 병을 모신 탑이 각각 세워져 모두 10개의 사리탑이 세워진다. 이 탑들은 후대에 다시 나뉘어져 인도 전역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불탑이 세워졌다고 한다.</p>
<p><br /></p>
<p>부처님의 열반은 불교교단의 큰 변화를 일으키게 되는 계기가 된다. 이미 직접 부처님께 설법을 들을 수 없게 되자, 부처님을 흠모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이러한 부처님에 대한 흠모의 마음은 지금까지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실천하는 수행 뿐만 아니라, 부처님에 대한 추모, 즉 기도라는 형식을 만들어 낸다. 이는 기존의 수행과 더불어 신앙이라는 종교적인 색체를 불교가 가지게 되었음을 의미한다.</p>]]></description>
	<dc:creator>용월사</dc:creator>
		<dc:date>Mon, 16 Aug 2010 13:57:09 +0900</dc:date>
	</item>
	<item>
	<title>부처님의 일생 - 위대한 죽음</title>
	<link>http://yongwolsa.org/bbs/board.php?bo_table=b42&amp;wr_id=16</link>
	<description><![CDATA[<p>위대한 죽음</p>
<p> </p>
<p><br /></p>
<p>★ 대반열반(大般涅槃)</p>
<p><br /></p>
<p>부처님은 80세의 노구를 이끌고 제자 아난다만을 데리고 북쪽으로 마지막 설법의 여정을 떠난다. 도중에 많은 이들의 공양을 받는데 특히 유녀(遊女, 창녀) 안바파리의 공양은 유명하다.</p>
<p><br /></p>
<p>어느 날 부처님은 파바성의 대장장이 춘다(Cuntha, 純陀)의 망고나무 과수원에 머무르게 된다. 당시 대장장이와 같은 수공업자들은 초하층 카스트로서 멸시받는 존재였지만 부처님은 그러한 차별 없이 누구에게서나 공양을 받았다.</p>
<p><br /></p>
<p>춘다가 공양한 식사를 마친 부처님은 심한 설사를 앓게 된다. 부처님이 공양 받은 식사에는 독버섯과 썩은 돼지고기가 있었다고 한다. 부처님은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춘다를 배려하여 그의 공양의 공덕을 칭찬한다. 만약 부처님이 이대로 열반하시면 춘다는 부처님을 죽인 악인이 되어 버리기 때문에 이를 배려한 것이다.</p>
<p><br /></p>
<p>부처님은 고통을 참아가며 쿠시나가라의 두 구루의 사라수(沙羅雙樹) 아래 마련된 자리에 눕는다. 부처님의 열반을 슬퍼하는 아난다에게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는 죽어야하는 존재이니 냉정을 지키라고 하고, 부처님께 마지막으로 설법을 청하는 수행자들에게는 정중히 법을 설했다. 그러나 부처님의 체력은 이미 한계를 넘어 죽음에 이르고 있었다. 부처님은 자신의 열반 후에는 가르침에 따라, 스스로의 노력에 의지하며 수행을 게을리 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80세의 생애를 마친다. 이러한 부처님의 위대한 죽음을 대반열반(大般涅槃, 완전히 번뇌가 없어진 상태)이라고 한다.</p>
<p><br /></p>
<p>전설에 의하면, 사라쌍수까지도 부처님의 열반을 슬퍼하여 때 이른 꽃을 피워 부처님의 주검에 꽃잎을 뿌렸다고 한다.</p>]]></description>
	<dc:creator>용월사</dc:creator>
		<dc:date>Mon, 16 Aug 2010 13:49:28 +0900</dc:date>
	</item>
	<item>
	<title>부처님의 일생 - 많은 대중들의 귀의</title>
	<link>http://yongwolsa.org/bbs/board.php?bo_table=b42&amp;wr_id=15</link>
	<description><![CDATA[<p>많은 대중들의 귀의</p>
<p><br /></p>
<p>부처님이 고향에 돌아오자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의 명성을 듣고 제자가 된다. </p>
<p>그 중에는 여성출가자도 있었다.</p>
<p> </p>
<p><br /></p>
<p>★ 신분에 상관없이 누구라도 제자가 될 수 있다.</p>
<p><br /></p>
<p>깨달음을 얻은 부처님은 몇 년 후, 고향으로 돌아가 아버지와 양 어머니와 재회하게 된다. 그때 석가족 출신의 많은 이들이 출가하여 부처님의 제자가 된다. 이들 중에는 후에 부처님의 가르침에 반발하여 교단을 뛰쳐나가 새로운 분파를 형성한 제바달타(Tevadatta, 提婆達多), 부처님을 가장 가까이에서 모시며 가장 많은 설법을 들은 아난(阿難), 부처님의 이복형제인 손타라난다(孫陀羅難陀) 등이 있다. 또한 이들의 출가시에 삭발을 해주던 이발사 우파리(優婆離)는 자신이 최하층의 카스트였기 때문에 출가하고 싶었지만 이를 단념하고 있었는데, 이를 안 부처님은 신분의 높고 낮음에 관계없이 누구나 출가할 수 있다고 설해 우파리의 출가를 허락한다. 후에 그는 지계제일의 10대 제자로 불릴 만큼 불교교단의 중요한 존재가 된다. 그리고 부처님의 아들인 라후라(羅睺羅)는 당시 미성년자였지만 출가가 허락되어 사리불 아래서 배우게 하였다.</p>
<p><br /></p>
<p>한편, 부처님의 양모 역시 출가를 원하였다. 처음에는 여인이라는 이유로 출가가 허락되지 않았지만, 그녀의 강한 의지를 받아들여 결국 출가를 허락한다. 이리하여 불교교단에 있어서 최초의 여성출가자 즉 비구니가 탄생한 것이다. 그리고 부처님의 부인 야쇼다라(Yasodhara, 耶輸陀羅)도 출가한다. 남성 출가자인 비구와의 교섭이 엄하게 금지되고, 여러 가지 조건이 붇기는 하였지만, 여하튼 불교 교단에서의 여성 출가자의 출현은 교단사적으로 큰 의의를 가진다.</p>
<p><br /></p>
<p>이들 이외에도 인도 전역에서 부처님을 찾아 출가 출가제자가 되거나 재가신자로서 부처님께 귀의한 이들이 많았다. 특히 신분계급의 고하에 상관없이 누구나 제자가 되었다는 것이 불교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였다. 하물며 도둑들도 부처님께 출가하였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이다. 출가 당시 그 전까지의 사회적 지위나 이력 등이 참고가 되기 시작한 것은 부처님의 열반으로부터 한참 후의 일이다.</p>
<p><br /></p>
<p>당시 출가자들을 보면 상인계급과 바라문계급이 압도적으로 많으며, 왕족이나 무사계급은 적다. 또한 부처님이 농민 계층에 대한 포교나 전도 행적이 거의 보이지 않는 다는 점에서, 농민 지지기반이 약했음을 알 수 있데, 이는 후에 인도에서 불교가 소멸하게 된 주요한 원인의 하나로도 생각되어 지고 있다.</p>]]></description>
	<dc:creator>용월사</dc:creator>
		<dc:date>Mon, 16 Aug 2010 13:48:34 +0900</dc:date>
	</item>
	<item>
	<title>부처님의 일생 - 기원정사</title>
	<link>http://yongwolsa.org/bbs/board.php?bo_table=b42&amp;wr_id=14</link>
	<description><![CDATA[<p>기원장사의 기진</p>
<p> </p>
<p><br /></p>
<p>★ 기원정사의 탄생</p>
<p> </p>
<p>코사라국의 수도 사위성에 수달타(Sudatta, 須達多)라는 큰 부자가 있었다. 그는 의지할 곳 없이 고독한 이들에게 식사를 공양하는 장자(給孤獨長者)로도 유명한 사람이다. 장사차 왕사성을 방문하던 그는 부처님이 그곳에 계시다는 소문을 듣고 부처님을 만난다. 그리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귀의하여 재가신자가 된다.</p>
<p><br /></p>
<p>사위성으로 돌아온 수달타는 부처님과 제자들을 그곳으로 초대하고 싶었지만 적당한 장소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코사라국의 기타태자(祇陀太子)의 정원이 적당하다고 보고 그곳을 자신에게 팔아줄 것을 태자에게 부탁한다. 그러나 태자는 설령 금화로 정원을 다 덮는다고 해도 팔지 않겠다고 이를 거부한다. 수달타는 생각 끝에 만약 금화로 정원을 덮는다면 그 덮은 만큼의 면적의 정원을 자신에게 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하인들을 시켜 금화로 정원을 덮기 시작한다. 그러한 수달타의 열의에 감동한 태자는 토지를 수달타에게 내 주었고 부처님께 기진할 정사(精舍)를 지을 수 있었다고 한다.</p>
<p><br /></p>
<p>기원장사(祇園精舍)라는 이름은 기원에 새워진 정사라는 뜻인데, 기타태자의 정원, 즉 ｢祇陀園｣에서 타(陀)자가 생각된 것이 기원(祇園)이다. 후에 부처님은 제자들과 함께 이곳을 자주 찾았으며 많은 경전들이 이곳 기원정사에서 설해진 부처님의 설법들이다.</p>
<p><br /></p>
<p>기원정사가 생기기까지의 이상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몇 가지 당시의 시대상을 읽을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중요한 것은, 당시 갠지스강 유역의 화폐경제가 크게 발달하여 이를 통해 부를 축적한 상인 계층들이 많이 있었으며, 이들은 기존의 왕이나 무사계급들의 전유물 이라고 도 할 수 있었던 토지에 대한 권리를 금전을 통해 사들이기도 하였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들 상인 계급들은 불교교단의 경제적 후원자로서 교단 발전에 큰 역할을 담당하였다.</p>]]></description>
	<dc:creator>용월사</dc:creator>
		<dc:date>Mon, 16 Aug 2010 13:47:46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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