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시작과 삼장의 성립
불교의 출발은 누가 뭐라고 해도
석가모니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에서 얻은 깨달음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고자 했던, 이른바 전법(傳法)의 의지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만약 부처님 스스로가 깨달음은 당신의 것만으로 하였다면 지금의 불교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래(如來, Tathāgata: 진리에 도달한 사람)
불타(붓다, 佛陀, Buddha: 깨달은 사람)
실제로 붓다는 35세에 깨달음을 얻은 후, 80세 쿠시나가에서 열반에 들 때까지(붓다의 입멸연도에 대해 크게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기원전 383년으로 보는 설이고, 다른 하나는 기원전 484년으로 보는 설이다.) 45년간 제자들과 더불어 중인도의 각 지역을 돌며 출가자는 물론 많은 재가자들에게 가르침은 전한다.
붓다의 열반 이후, 그 유해는 쿠시나가의 말라족에 의해 정중히 화장되었다. 그리고 그의 사리는 중인도의 여덟 부족들에게 분배되어 각각에 불탑(佛塔, stupa)이 건립된다. 이 불탑은 재가 신자들을 중심으로 경영되었는데, 불탑에 대한 의례와 기원이 세월이 지남에 따라 점차 불탑신앙으로 성립되고, 후에 이러한 불탑신앙은 불교의 여러 신앙들의 모태가 되었다.
부처님이 45년간 설하신 가르침은 주로 출가 제자들에 의해 전해진다. 당시 이미 문자가 존재하였지만, 성스러운 가르침은 문자가 아닌 기억과 암송에 의해 전수되었던 시대였던 까닭에 붓다의 가르침 역시 제자들의 기억으로 전수되었다. 여러 불경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성문(聲聞)이라는 용어는 이러한 의미에서 원래 부처님의 제자를 이르는 말이었다. 또한 대부분의 불경이 여시아문(如是我聞)으로 시작되는데, 이 말은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라는 뜻이다.
붓다 열반 후 중인도 마가타국의 수도 왕사성에 오백명의 출가제자들이 모였다. 45년간의 붓다의 가르침을, 다시 말해 여러 제자들 각자가 암기하고 있었던 부처님의 가르침을 한곳에 모여 서로 확인하고 이를 모아 붓다의 가르침으로서 확정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모임이 후에 불교사에서 말하는 이른바 제1결집(結集)이다. 제1결집은 대가섭(大迦葉)의 총 지휘 아래, 기억 제일로 불리는 아난존자(阿難尊者)를 중심으로 교법(敎法, dhamma)이 결집되었고, 계율(戒律, vinaya)의 결집에는 계율연구의 일인자였던 우바리(優波離)가 중심이 되었다.
이와 같이 붓다의 가르침은 붓다 열반 직후부터 교법과 계율로 분류되어 전해진다.
먼저, 교법은 스승이 제자에게 구전(口傳)하는 과정에서 점차 일정한 형식을 갖추게 되어 경(經, sutra)으로서 정리된다. 이러한 형식화 과정에서, 경전 안에 내용의 설명하는 부분이나 ‘여시아문(如是我聞)’과 같은 정해진 형식 문구들이 첨가되었다. 이렇게 정리된 수 많은 경전을 집대성 한 것이 경장(經藏, sutra-pitaka)이며, 경장은 사 아함(四阿含, Āgama) 혹은, 오 니카야(nikāya)로 분류되어 있다.
다음으로 계율은 제자들의 수행규칙을 모은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동시에 불교의 출가 교단의 교단규칙을 포함하고 있었다. 불교 교단을 승가(僧伽, 僧, samgha)라고 하는데 이 승가의 규칙이나 운영방법이 정리되어 감에 따라 계율의 내용도 늘어난 것이라고 보아도 좋다. 계율을 집대성한 것을 율장(律藏)이라고 한다.
붓다의 열반 후, 불교교단은 이와 같은 경장(經藏)과 율장(律藏)을 전승 발전 시켜 나간다. 후에 교법의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짐에 따라 제자들에 의해 많은 저작들이 만들어 지는데, 이들 저작들은 붓다의 직접 가르침이 아님으로 경장에는 포함되지 않고 따로 논장(論藏)으로서 집대성 된다. 율장에 대한 주석서 역시 만들어지기는 하지만 수적으로 적은 양이여서 따로 藏으로서는 집대성 되지 못하고 율장에 포함된다. 이로서 불교의 모든 이론과 실천의 근거라 할 수 있는 경·율·론(經律論) 삼장(三藏)이 완성되었던 것이다. 삼장이 문자로서 기록된 것은 기원전 1세기경이었다.